기적은 믿음의 조건이 아니다

초자연 현상이나 초인적인 능력을 보면 사람들은 무척 놀란다. 그리고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지 온갖 추측을 한다. 진짜 사람이 한 걸까, 하나님의 능력일까, 악마가 하는 일일까. 하지만 대부분 규명을 못하거나 의문 자체로 남겨두고 만다. 과학이론이나 논리로 설명할 길이 없는 희한한 일들을 신앙인들이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 건가. 사람의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공중에서 일곱 바퀴를 돈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100미터를 5초에 달리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아무런 통신수단 없이 미국에서 한국에 있는 사람 마음 읽을 길은 없다. 정확히 말해 초인적인 능력은 순전히 사람에게서 나는 게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입는 것이다. 시퍼렇게 날 선 칼 위를 걷는 것이나 눈 빛 만으로 능력을 행하는 등의 일은 고차원의 눈속임이 아니라면 사람의 힘이 아니다. 그럼 분별의 문제가 남는다. 어디까지가 눈속임이고 어디부터가 악마의 짓이며 하나님의 기적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려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애굽 왕을 굴복시키셨다. 그렇다면 이제도 하나님을 부인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누군가를 통해 그 당시처럼 무서운 재앙들을 보이셔서 사람들을 굴복시키시면 되지 않는가. 왜 그렇게 안 하시나. 이유는 명백하다. 하나님은 정복자나 폭군이 아니시다. 사랑이시다. 불치병자나 장애자 치유하는 매직쇼는 없다. 마술이 인간의 악한 마음을 변화시킨 일도 들어본 적이 없다. 왜 못하나. 뭐가 다른 건가. 분별의 기준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걸 모르는 존재인 악마가 하는 일은 음모와 협박, 이간질일 뿐이다. 선한 것이 없어서 모든 게 거짓과 사악함이다. 그래서 악마를 힘입어 행하는 초능력은 속임수와 공포, 거만함과 어둠의 형상들로 가득하지만, 하나님의 기적에는 언제나 그의 선하심과 사랑이 드러난다.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시는 뜻은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그의 선하심과 사랑을 보이시려는 것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그 뜻을 이루고 계신다. 인간이 언제 죄를 고통스러워했고 언제 하나님의 사랑을 간곡히 원했던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친히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죄로 가득한 인생을 품어주신 것이 아니던가. 위압이나 강제가 아닌 놀라운 희생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 주시지 않았던가. 그 사랑에 감동해서 우리가 그분을 섬기는 것 아닌가. 신기한 능력 앞에 고개 숙일 게 아니라 참된 사랑 앞에 엎드려야 한다. 초능력 만으로 믿음의 조건 삼을 수는 없다. 마귀들도 얼마든 거짓 능력을 행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서 믿는 게 아니다. 강압에 의한 것도 아니다. 선택이다. 그런 선택권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 사랑이시란 증거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사랑에 감동하기를 원하신다. 초능력의 근원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초인적인 능력에서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Jung-Ho Sohn